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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에너지/무작정 걷기

[제주 올레길 3코스] 3-A코스를 걸으며 인생을 배우다 (1)

by 경험부자 2024.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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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작정 걷겠다고 찾은 제주도 첫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카페에 가서 제일 유명하다던 메뉴 하나씩 주문하고 비를 감상했다. 계획은 틀어졌지만 뭐 어떤가. 원래 계획대로 되는 건 잘 없지 하며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책을 읽었다. 

제주 도렐커피

불평 하나 없이 현실을 너무 순순히 받아들였던건지, 11시쯤 되니 날씨가 다시 갠다. 지금이라도 나가자. 얼른 옷 갈아입고 배낭 하나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음이 가뿐했다.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3코스 시작점 온평포구

버스를 타고 시작점인 온평포구에서 신나게 기념사진도 찍고. 이날 온평리 마을을 지나 시작점으로 가는 길에 제주 전 지역 폭염경보라고 야외활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 방송이 울렸다. 폭염이 뭐 대순가. 할 수 있다 특유의 긍정 메시지를 외치며 걷기 시작했다. 

온평포구 바다

바다를 보며 걷는데 더운 날씨도 싹 잊게 된다. 근데 덥긴 덥다. 금새 온몸이 땀으로 적셔진다. 조금 걷다 보니 3A, B코스 갈림길이 나온다. 우린 걷기 전에 뭐라도 먹자 싶어 김밥을 먹으며 고민하기로 했다.

 3-A코스는 상급자 코스에 20km가 넘는 길을 걸어야 한다. 낮지만 봉우리도 2개나 넘어야 하는 코스다. 3-B코스는 산을 넘는 대신에 바다 해안길을 따라 걷는 코스, 중급자 코스였다. 마침 남편과 함께 제주를 왔고, 내심 어려운 코스를 같이 걷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올레길이 처음인 남편에게 선택을 맡겼다. 남편이 한참을 고민하더니, 3-A코스로 가자고 한다. 혼자 걷기 힘든 코스를 같이 걸어주는게 좋겠다 생각했단다. 참 고마웠다. 우린 한라산 정상도 함께 찍었으니 20km쯤이야 무리 없을 거야 힘내보자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힘든 코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얼음물도 금새 녹아버리는 더위

3-A코스를 선택하고 보니, 이미 늦은 출발이라 빨리 걸어야 겠다 싶었다. 힘을 내보자 생각하고 종종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정말 더웠지만, 하늘은 높고 구름은 손에 닿을 듯 너무 예뻤다. 할 만하다 생각했다. 

너무 예뻤던 뭉게구름
걸으며 만난 예쁜 꽃

근데 너무 너무 더워서 잠시 카페에 쉬어가고 싶은데 정말이지 지나가며 만난 카페들이 다 문을 닫았다. 공휴일이라 그런 듯하다. 너무 힘들어 걷다 발견한 재활용센터에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무작정 들어갔다. 쓰레기냄새와 함께 땀을 식혔다. 수거장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오늘 같은 날에 왜 걷냐며 조심하라고 하신다. 이 동네가 제주에서 유일하게 한라산이 안 보이는 곳이라고 하셨다. '왜요?' 했더니 '나도 몰러~ ' 하시던 유쾌하신 아주머니. 

  얼음물은 다 녹아 마셔버렸고, 땀은 줄줄 흘렀지만 그래도 함께 걸으니 걸을만 했다. 첫번째 만난 통오름.  점점 말이 없어지는 남편을 뒤로하고 조금씩 내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높지 않다 들었고, 쉽게 오를 거라 생각했다. 생각했던 대로 산을 오르는 느낌보다는 동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느낌.  완만한 경사여서 오르기 어렵지 않았다. 근데 날씨가 어려웠다. (ㅋㅋㅋ) 사진만 보면 너무 멋지기만 한데, 내리쬐는 태양이 어찌나 뜨겁던지. 비 온 뒤라 더 습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난 그래도 꽤나 괜찮았는데, 나중에 남편이 다음 코스는 함께 안걷겠다 생각하면 어떡하지 코스를 잘못 골랐나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남편이 힘들어 보이면 조금 쉬어가고, 기다려 주었다. 

통오름 코스를 지나고 나오면 도로를 만난다. 약간 복잡한 길인데 차가 많지는 않아 조심조심하며 도로를 넘었다. 독자봉을 오르러 가는 길에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다들 폭염경보를 잘 지켜 집에 계시는구나. 

멀리 보이던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길을 걷다보니 독자봉 입구에 다다랐다. 카페가 없어 한 번 쉬지도 못했던 우리는 독자봉에 오르기 전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물도 마시고, 신발 양말 다 벗어던지고 발도 좀 주물러주고, 땀도 식혔다. 왜 모든 카페가 문이 닫았을까. 출발 전에 김밥이라도 먹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10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독자봉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저씨 2분이 보였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우리도 다시 걷자 힘을 냈다. 

독자봉 입구에서 파업 선언한 남편

독자봉은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걸었다. 완만해서 역시나 걷기 괜찮았다. 역시나 예쁜 선물이 있었다. 독자봉 정상에서 본 성산일출봉 전경. 아름다웠다. 정상에 오르니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고. 더 걸을 힘이 절로 났다. 

독자봉 정상

정상 찍고 내려가면서 보았던 예쁜 숲은 또 어떻고. 아름답다는 얘기를 100번은 넘게 했다. 자연이 주는 위로가 걸으며 몸소 느끼는 햇살이, 바람이 충분했다. 아무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냥 다 위로해 주는 느낌이다. 고맙다. 

소나무는 어쩜 저렇게도 곧고 예쁘게 자랐을까. 지금 다시 보니 참 사이 좋게도 서있네. 친구들이 많아서 하나도 외롭진 않겠다. 나무들 덕분에 산속을 걸을 때만큼은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땀도 식히니 더웠지만 괜찮았다. 

독자봉을 내려오니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아 이제 바다가 보이는걸 보니 중간지점에 곧 도착하겠다 생각했는데, 저 바다를 보고도 한참을 걸었다. 다시 태양 아래를 걷기 시작하니, 남편은 말이 없어졌고, 묻는 질문에 대답은 손모양으로 하겠단다. 말할 힘도 없단다. 군대에서 어떻게 40km를 넘게 걸었냐는 내게 군대에서 걸을 땐 젊었을 때고, 지금은 그때랑 다른 몸이란다. (그건 나도 인정) 

2km 정도만 더 걸으면 중간지점이라는데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인지 중간지점인 김영갑갤러리까지 가는 길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비닐하우스를 계속 지나쳐야 하는 길이라서 그런지, 한참을 걸어간 느낌이다.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정말 다 왔어"라고 10번은 넘게 이야기하고서야, 중간 지점은 김영갑갤러리에 도착했다. 

김영갑 갤러리 중간지점

남편에게 중간점에 도착하면 분명히 카페나 식당이 있을 거라고 다독이며 왔는데, 뭔가 싸하다. 정말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남편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비교적 쌩쌩했던 나는 남편에게 혼자 잠깐 쉬고 있으라고 얘기해 두고, 휴대폰만 가지고 문을 열어둔 카페나 식당이 있을까 싶어 내려갔다. 전광판이 번쩍이는 식당이 보이길래 뛰어 내려갔다. 휴무란다. 카페도 다 문을 닫았다. 정말 어쩌지, 이제 택시 불러서 숙소로 돌아가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편의점이 보였다. 

즐거운 편의점

불이 켜져있다. 저기 가면 먹을 게 있겠지. 서둘러 들어갔다. 내가 남편을 살렸을까? 

다음 이야기는 인생을 가르쳐주었던 올레길 3-A코스 2탄에서..!!! 

[제주 올레길 3코스] 3-A코스를 걸으며 인생을 배우다(2)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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